본문 바로가기
글꼴 모음 Zip

저작권 없는 상업용 폰트 독립운동가 글씨체 – 독립서체 윤봉길체

by 존버씨 2024. 1. 17.

저작권 없는 상업용 폰트 독립서체 윤봉길체.

이 폰트는 2019GS칼텍스에서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독립운동가 몇 분의 필적을 정식 폰트로 개발, 배포한 폰트입니다폰트를 사용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나라를 위했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아름다운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시길 바랍니다윤봉길 의사는 도시락 폭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윤봉길 의사가 던진 것은 도시락 폭탄이 아니라 수통 폭탄이죠.

 

저작권없는 상업용 폰트 - 독립서체 윤봉길
저작권없는 상업용 폰트 - 독립서체 윤봉길

 

독립서체 윤봉길체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윤봉길 의사가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을 윤봉길체로 적어봤습니다.

 

 

독립운동가분들의 정신과 마음이 담긴 글씨체를 다운로드하여 직접 사용해 보세요.

윈도우용(TTF) 다운로드.zip
0.75MB
맥용(OTF) 다운로드.zip
0.75MB

 

 

윤봉길(尹奉吉 1908621~ 19321219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서 자란곳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서 자란곳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현재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사셨네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가면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지가 있습니다.

 

윤봉길의 원래 이름은 '우위'였고 '봉길'은 별명이라고 합니다.

윤봉길은 19세의 나이에 1920년대 농민계몽운동에 힘쓰다 계몽운동만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19303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글을 남기고 중국 망명길에 오릅니다.

1932년 '한인애국단'에 입단하여 김구의 주관 하에  상하이 전승 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합니다.

거사 전 윤봉길(24)은 존경했던 김구(56)에게 "선생님의 시계가 낡아 보이네요. 이제 제게는 한 시간밖에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다." 라고 말을 하며 시계를 맞교환합니다. 

1932429일 오전 11시 40분 상하이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에서 일본의 상하이 전승 축하기념식에서 일본 국가가 거의 끝날 무렵 윤봉길은 수통형 폭탄을 투척하였습니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가와바타 거류민단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은 다리가 부러졌으며, 시게미쓰 공사는 절름발이가 되고 무라이 총영사와 토모노 거류민단 서기장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윤봉길 의거의 상황과 결과는 서방 각국으로도 즉시 타전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켰고 중국인들도 모두가 찬탄하는 가운데 장제스(장개석) 총통은 “백만 중국군대가 못한 일을 고려청년 한 사람이 해냈으니 장하다는 찬사와 함께 무관심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중국육군중앙군관학교에 한인 특별반을 설치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성원하게 됩니다.
윤봉길은 거사 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같은 해 5월 일본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219일 일본군은 윤봉길을 공개 처형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윤봉길에 대한 여론이 좋아지고 일본군이 침략군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질 수 있을 것을 염려해, 일본 육군 9사단 주둔지였던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사형을 집행했다고 전해집니다.
1946515일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현재 서울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 묘에 안장되어있습니다.